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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October, 2020

요즘 읽은 웹툰(5): 어떤 웹툰에 대한 소수의견

[새디스틱 뷰티] 외전B가 봄툰 서버를 터뜨렸다. [새디스틱 뷰티]는 BDSM 소재의 성인 웹툰이다. 성인물 치고는 호흡이 꽤 긴데(117화 완결) 내가 이 웹툰을 끝까지 잡고 본 이유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론 문창과-출판계를 배경으로 끌어왔기 때문이고(개인적인 흥미다), 작화가 훌륭하기 때문이고(성인물은 어찌됐건 누드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벗는 순간 너무나도 명징하게(…) 느껴진다), ‘시대정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여성향 에로물에는 어떻게 스며들고 융화될 수 있는지 관찰하기 좋은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천두나’. 문창과 재학 중 이미 등단하다 못해 심지어 데뷔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렸지만, 여류 작가라는 딱지가 커리어에 페널티가 될 거라 예상해 ‘천반석’이라는 가명으로 활동 중이고, 몇 년 간 슬럼프에 빠져 차기작을 내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 믿을 수 없이 엄청나게 유망한(…) 예술가가 부진한 원인이 변민호, 미래에 [외전 B]의 주인공이 될 예정인 구남친이다. 천두나와 문창과 CC였던 변민호는 자격지심 덩어리다. 남의 글에 대한 신랄한 평가로 분위기를 조져 놓지만 자기 글은 또 제대로 쓰지는 못하는 합평 빌런의 전형이랄까 그런 것이다. 그런 남자 변민호가 여자 천두나와 사귀었으니 결말은 예상 가능하다. 변민호의 죄목은 가스라이팅이다. 천두나의 글을 교묘하게 깎아내리고, 그래서 천두나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래서 천두나는 변민호의 평가적 시선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리고 순진한 시절, 대체로 예스걸이었던 천두나는 변민호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 막 나가는 심정에서 동기인 차우경(남자)과 섹스를 하고, 에세머인 차우경과의 관계 속에서 펨돔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엄청나고 엄청난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새디스틱 뷰티]는 이 과격하고 지배적인 색정광이면서 한편으로는 방어적이고 자기징벌적인 측면이 있는 천두나가 ‘우해솔’이라는 순종적인 남자와 순정한 사랑을 만나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과...

그때 그 텔레비전이 좋았다고 말하지 마오

에이알에스 번호가 적인 브라운관 한 귀퉁이에서 성큼성큼 뛰는 숫자를 센다. 천만 원대는 쉽고, 억대도 보통이다.  90년대 말, [사랑의 리퀘스트]는 주말 저녁 풍경의 한 조각이었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그랬다. 그건 시청이라기보다 ‘리추얼’에 가까웠다.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사랑의 리퀘스트]는 늘 때맞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지금도 검색 포털에 키워드를 넣어보면 기획의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년소녀 가정, 결식아동, 장애인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귀질환이나, 백혈병 등 난치병으로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여러 사연을 다양한 시선으로 따라가며 그들의 삶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인간애를 느껴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는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지정 번호로 전화를 걸면 시청자 누구나 ‘사연’의 주인공에게 이천 원을 기부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랑의 리퀘스트]와 함께하는 저녁이 싫었다. [사랑의 리퀘스트]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사랑의 리퀘스트]와 동기화되어 있는 엄마의 대본이 싫었다. “불쌍한 사람들 좀 봐. 넌 행복한 줄 알아.” 엄마는 마치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엄마야말로 대부분의 경우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조차 않았다. 집안일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틈이 나면 흘낏 쳐다보는 게 다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참여하고 실제로 긴요한 도움이 되었을 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선한 의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리퀘스트]는 그런 식으로 소비되는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었다. IMF를 통과하던 시절이었다. 텔레비전을 도배한 뉴스들만 봐도 마음이 어두워졌다. 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고, 합병하고, 구조조정하고, 노숙인이 늘었고, 자살자가 늘었다. 우리 집도 휘청, 했다. 이 ‘휘청’이 우리를 무너뜨릴지 비껴 나갈지 몰랐기에 조마조마한 나날이었다. 엄마의 불쾌한 행복 교육은 그때 시작되었다. “넌 행복한...

201X1130: 원치 않는 임신을 발견했다

지금도 숨을 들이키면 그 공기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겨울 초입의 출근길이었다. 역에서 나와 가장 먼저 보이는 약국에 들어갔다. 회사 출근 기록을 찍고 눈을 피해 화장실에 앉았다. 소름 끼치게 선명한 두 줄이었다. 테스트기는 휴지에 봉지에 엄폐해서 버렸다. 빠듯한 점심시간을 틈타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 이미지를 여러 개 늘어놓고 골라보라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후순위였을 것이다. 따뜻한 스태프와 행복한 임산부들로 와글와글한, 자연주의 분만을 강조하는 산부인과에서 나 혼자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었다. 초음파를 보고 울었다. 이제 울었다는 묘사는 정보로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나는 거의 매 순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숨죽여 울고, 흐느끼고, 통곡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동원했다. 한동안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무엇을 구현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늘 모든 것을 말하는 데는 실패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이유와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는 첨예하게 경합하고 있었다. 나의 ‘상황’을 진정으로 이해시키려면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무엇이었는지, 빚, 수입, 경력, 관계까지 모든 내력을 털어놔야 할 텐데 어차피 그런 글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셜 미디어에서 낙태와 생명에 대해 자못 아는 체 판관 노릇을 하는 남자들을 보면 피가 끓었다. 신이 나의 존재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어쩌면 이 기억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높은 해상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반쯤 그 남자들 덕인지 모른다 – 나는 원래 잘 잊어버린다). 나는 낙태죄 폐지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싶을 때마다 글이 되지 못하고 글이 되어도 온전하지 못할 내 삶의 조각을 꺼내 들곤 했다. 나의 특수한 경험은 비장의 무기 같은 것이었다. 이거면 입 다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거야. 때때로 그것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한 사람은 물러가도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