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미 월드의 여자 주인공들은 멍청한 꿈을 꾼다. 고교 은사였던 유부남의 여자가 되고 싶어하거나([미쓰 홍당무]) 대통령 남편을 내조하는 퍼스트 레이디가 되겠다는([비밀은 없다]) 너무나 속물적이라는 이유로 명예와 멀어지는 꿈. 문제는 ‘여자 주제에’, ‘멍청한 주제에’, 혹은 ‘멍청한 여자 주제에’ 지독하게 끈질기다는 것이다. 이 폭주기관차들은 망신을 당할지언정 한 번 찍은 표적을 놓지않는다. “에이 세상에 그런 여자가 어딨어”라고 손사레치는 사람의 눈 앞에 “여기 있는데?”하며 대령해 놓은 것 같은 여자들. 역겹고 못생긴 춤을 추면서 눈을 피할라 치면 나를 관찰해보라고, 더 똑바로 보라고 흔들어 대는 이경미의 여자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드라마화는 줄다리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안은영은 정세랑 월드의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공유하는 선량한 성정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매일매일 나빠지는 것만 같은 세상이 너무 기울어지지 않도록 걸어 놓은 균형추 같은 존재. 그는 비물질적인 에너지를 젤리 형상으로 보고, 만지고, 제거할수도 있는 희한한 기술을 갖고 태어났지만 능력을 이용해 취할 수 있는 금전적 이익을 자발적으로 거부했다. 인류를 위한 그의 무급 봉사는 허공에 주먹질하는 기행으로 비칠 뿐이다. 이타심 없이는 선택하지 못할 길을 가는 여자는 이경미 월드에 초대되기엔 너무 모범적이다. 좀더 선을 긋자면, 지극히 사적인 욕망에 몰두하느라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경미의 여자들과는 정 반대의 가치를 표방하는 캐릭터라고 해도 좋다. 그럼에도 나는 이경미를 좋아하니, 안은영이 오로지 원작의 실사화에만 충실했다면 그런 대로 실망했을 거란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안은영은 이경미가 그린 여성 인물들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쉽고 그러므로 이입하기 쉬운 캐릭터가 되기는 했다. 드라마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혈혈단신 중견 히어로가 권태를 극복하는 이야기로 바꿔 놓았다. 안은영의 환멸과 피로감은 별 애정도 없는 일터에 기계적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그것과 유사하고, 능력 따위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때 절묘하게 찾아오는 초능력의 상실은 히어로 서사에서 어렵지 않게 접해볼 수 있는 종류의 갈등이다. 드라마가 가장 적극적으로 수정한 부분은 내러티브의 전략이다. 원작에서 해명하지 않고 밀어 둔 학교 소독업체의 갑작스러운 연락두절과 원어민 교사 매켄지가 몸담은 지하경제-블랙 마켓에서 얻은 힌트를 ‘일광소독’과 ‘안전한 행복(HSP)’ 간의 대결 구도로 키워, 목련고등학교의 ‘터’에 흐르는 기운을 독점하려는 세력 다툼으로 확장시켰다. 원작에서는 초장부터 봉인석(압지석)을 시원하게 개방한 뒤 학교 지하층 전체를 시멘트로 메워 버리는 결정을 내리지만, 드라마에서는 하필이면 목련고등학교에, 하필이면 안은영이 파견된 사연의 배후가 문제다.
정세랑 월드를 하나의 어휘로 묘사하라면 ‘보듬는다’를 꼽을 것이다. 정세랑의 소설에는 이것이 너무 잔인하거나 절망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 거라는 약속 같은 것이 버티고 있다. 소외된 존재들에 꼼꼼하게 보내는 눈길, 누구도 상처받지 않도록 말의 힘을 가다듬는 태도는 독자를 안전한 느낌 속에 머물게 하지만 동시에 환상적이라는 감각도 준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이경미의 장기는 ‘찌르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로 이주한 세계는 조금 더 탁해졌다. 응급 처치 교육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매뉴얼을 지키는 소설 속 안은영의 정의로움은 의료용 더미를 이고 지고 전교를 순회하는 고집스러움으로 부각된다. 인기는 없지만 성실했던 교사 한아름은 음흉하게, 투명하고 싱거운 성혜연은 도전적인 성아라로, 수호자였던 홍인표의 조부는 세계 운용을 꿈꾸는 위험한 야심가로 바뀌었다. 새롭게 추가된 인물들은 이 세계가 너무 밝아지지 못하도록 바지춤을 붙들고 끌어내린다. 덕분에 쭉 청소년들의 해맑은 잔인성을 드러내는 우화적 공간이었던 이경미의 학교는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특색을 연장한다. 목련고등학교의 아이들은 소수자 혐오를 시연하는 꼭두각시가 될 채비를 마쳤다.
복잡하고 불친절해진 세계에서는 안은영의 싸움도 좀더 버거워졌다. 그에게 이 ‘아름답지 못한’ 세계의 비밀을 보는 능력은 축복보다 저주이고, 가지각색의 운명에 맞서는 매일은 존재의 미미함을 확인하는 쳇바퀴 돌기다. 소설의 최종 보스는 매켄지가 품은 개인적 차원의 악의였지만 이제는 자산과 인력을 갖추고 세계를 주무르려는 사이비 단체도 상대해야 한다. 안은영이 잃어버린 열의도 회복하고 ‘안전한 행복’의 흑막도 밝혀내야 하는 이중의 과제에 걸려든 와중에 슬라임처럼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단서가 있다. 원작에는 없었고, 드라마를 이경미스럽게 꾸며주는 폭소의 풍경이다. 이 드라마 속 인간들의 웃음은 작위적이고 기괴하다. 조례 시간마다 아이들이 받는 웃음 교육도, 홍인표의 방 안에서 대화를 나누다 별안간 웃어 젖히는 황가영도, ’안전한 행복’ 사무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 소리도. 영문을 모르고 따라 웃거나 웃는 모습이 웃겨서 웃을 수 있을 뿐 명백히 시청자를 소외시키는 이 가짜 웃음은 6화의 교무실 신에 이르러서야 배신자의 얼굴로 드러난다.
‘안전한 행복(Happiness Protect Safety)’이라는 이름은 정말로 의미심장하다. 단체명 자체가 단체의 목표인 ‘안전한 행복’은 웃음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목련고의 교훈이 ‘웃으면 복이 온다’인 것도, 웃음 교육이 목련고의 프로그램인 것도 설립자인 홍진범(홍인표의 조부)가 단체 관계자임을 암시하는 장치일 테다. 목련고 터의 기운을 잘 이용해 세계를 지휘하겠다는 ‘안전한 행복’의 계획은, 매켄지의 ‘이끼 작업’이 무르익고 안은영의 능력이 상실되고 홍인표가 혼자 됐을 때 성큼 추진된다. 개방된 지하실에서 터져나온 (아마도 연못 자리였던 과거와 관련 있을)물 형태의 에너지가 학교를 휩쓸고 나서 목련고의 구성원들은 반으로 갈린다. 물에서 나온 것처럼 땀을 흘리는 사람들, 그리고 평소와 같이 마른 사람들.
‘젖은’ 쪽이 확실히 이상하다.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할퀴고, 잘못된 타이밍에 웃음과 울음을 터뜨린다. 교무실에서 혐오 발언을 난사하며 웃는 교사들은 홀로 진지해 웃을 수 없는 홍인표 때문에 더 배꼽이 빠진다. 동의해서는 안 되는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을 때의 어긋난 느낌을 서늘하게 상기시키는 장면이다. 여성혐오적 코미디 쇼의 객석에서 호응하는 관객들을 볼 때, 혐오를 농담의 재료로 삼는 동료들과 밥을 먹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
다시 1화로 돌아가 보자. 안은영의 유년기에 세상을 떠난 엄마는 소멸되기 직전 딸에게 “웃어. 그래야 행복해 져.”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행복의 반응으로서의 웃음이 아니라 웃음으로 세뇌하는 행복.
[보건교사 안은영]의 웃음은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웃음이다. 남이 웃으니까 웃기다. 웃기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웃기다. 우리는 그런 이유로도 충분히 웃을 수가 있다. 혐오와 짝을 지어 다니는 폭소는 죄책감을 잠재우고, 동참을 요구하는 제스쳐다. 웃음으로 하나 된 목련고의 구성원들은 ‘씌었다’기보다는 ‘벗어 던진’ 것처럼 보인다. 사고가 마비되고, 반성을 팽개친 상태에서 튀어나오는 날 것의 진심. 어쩌면 이것이 ‘안전한 행복’이 구상하는 기운의 사용 방식인지 모른다. 타자를 경계선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확보하는 안전, 동일성의 울타리를 단단히 정비함으로써 작동하는 보호, 안전하기 ‘때문에’ 행복한 세계.
이경미는 시각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일종의 충격 요법을 즐겨 쓰는 감독이기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너무 달려나가버리는 지점이 있기는 하다. 원작보다 차별과 혐오에 대해 좀더 노골적으로 논하게 되었지만, 정세랑 월드의 사려 깊음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이라면 이경미 월드의 ‘침입’이 영 못마땅할 수 있겠다. 그래도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여전히 착한 이야기다. 혐오의 홍수에서 누가 젖었고 젖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봤다.
‘기운 센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자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끌리는 자리’에 터진 물바다는 가난하거나, 퀴어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정상가족의 기준에 미달하는 가정에서 자라난 인물들에게 효력이 없었다. 태어난 뿌리가 없어 배꼽이 없는 백혜민. 근본도 전통도 없이 무식하게 쓸어 담은 전세계의 영물 콜렉션이 바로 그 자신인 안은영.
‘일광소독’과 ‘안전한 행복’은 양측에서 ‘내가 너의 가족이 되어주겠다’며 안은영을 회유하고, 안은영은 정말로 잠시나마 솔깃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상성의 다정하고 그리운 손길을 뿌리치고 오히려 따져 묻기를 선택한다. 이 세상에서 진짜 이상한 사람이 누구냐고.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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