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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ugust, 2019

요즘 읽은 웹툰(5): 어떤 웹툰에 대한 소수의견

[새디스틱 뷰티] 외전B가 봄툰 서버를 터뜨렸다. [새디스틱 뷰티]는 BDSM 소재의 성인 웹툰이다. 성인물 치고는 호흡이 꽤 긴데(117화 완결) 내가 이 웹툰을 끝까지 잡고 본 이유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론 문창과-출판계를 배경으로 끌어왔기 때문이고(개인적인 흥미다), 작화가 훌륭하기 때문이고(성인물은 어찌됐건 누드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벗는 순간 너무나도 명징하게(…) 느껴진다), ‘시대정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여성향 에로물에는 어떻게 스며들고 융화될 수 있는지 관찰하기 좋은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천두나’. 문창과 재학 중 이미 등단하다 못해 심지어 데뷔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렸지만, 여류 작가라는 딱지가 커리어에 페널티가 될 거라 예상해 ‘천반석’이라는 가명으로 활동 중이고, 몇 년 간 슬럼프에 빠져 차기작을 내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 믿을 수 없이 엄청나게 유망한(…) 예술가가 부진한 원인이 변민호, 미래에 [외전 B]의 주인공이 될 예정인 구남친이다. 천두나와 문창과 CC였던 변민호는 자격지심 덩어리다. 남의 글에 대한 신랄한 평가로 분위기를 조져 놓지만 자기 글은 또 제대로 쓰지는 못하는 합평 빌런의 전형이랄까 그런 것이다. 그런 남자 변민호가 여자 천두나와 사귀었으니 결말은 예상 가능하다. 변민호의 죄목은 가스라이팅이다. 천두나의 글을 교묘하게 깎아내리고, 그래서 천두나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래서 천두나는 변민호의 평가적 시선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리고 순진한 시절, 대체로 예스걸이었던 천두나는 변민호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 막 나가는 심정에서 동기인 차우경(남자)과 섹스를 하고, 에세머인 차우경과의 관계 속에서 펨돔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엄청나고 엄청난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새디스틱 뷰티]는 이 과격하고 지배적인 색정광이면서 한편으로는 방어적이고 자기징벌적인 측면이 있는 천두나가 ‘우해솔’이라는 순종적인 남자와 순정한 사랑을 만나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과...

선미, 분열하는 디바

놀라운 소녀들의 역사 원더걸스는 다사다난했다. 2007년, 〈아이러니〉로 데뷔한 원더걸스는 반 년도 안돼 주목받는 멤버였던 현아를 떠나보낸다. 어수선한 가운데 유빈으로 현아의 자리를 대체한 원더걸스에게 〈Tell Me〉는 ‘로또’였다. 〈Tell Me〉 신드롬, 그리고 〈So Hot〉과 〈Nobody〉의 연이은 히트는 원더걸스의 명성을 ‘국민 그룹’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JYP 엔터테인먼트는 원더걸스의 커리어가 가장 빛나던 시기에 해외 진출이라는 악수를 둔다. 아마도 박진영의 숙원이었던 이 야심찬 계획은 별다른 소득 없이 2년 간의 국내 공백만을 남겼고, 선미는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혜림을 새 멤버로 영입하고 귀향한 원더걸스는 전성기의 리듬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2 Different Tears〉(2010), 〈Be my baby〉(2011), 〈Like This〉(2012) 등 연례행사처럼 공개된 활동곡들의 성적은 영광의 시절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쳤다. 이후 더 긴 공백기가 시작되었다. JYP가 ‘3대 기획사’로 세를 겨루게 된 시금석이 원더걸스였음을 생각하면 고달픈 말로로 보였다.[1]   그중에서도 선미의 이력은 특이한 편이다. 원더걸스가 기약 없는 휴지기를 가지는 동안, JYP는 연예계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선미를 솔로 가수로 복귀시켰다. 박진영은 박지윤에게 〈성인식〉을 주었던 것처럼 스무 살을 갓 넘긴 선미에게 〈24시간이 모자라〉(2013)를 주었다. 원더걸스 데뷔곡 〈아이러니〉 당시만 해도 다소 꾸민 듯한 저음이었던 선미의 보컬은 속삭이는 듯한 떨림이 있는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연상시키는 똑 단발을 흠뻑 적시고 맨발로 무대에 오른 선미의 퍼포먼스는 저돌적이지만 묘하게 경직되어 보였다. 〈24시간이 모자라〉는 여성의 ‘첫경험’을 욕망하는 한국 남성의 상상력을 고스란히 이식한 곡이었다. 성에 갓 눈떴지만, 소녀 태를 아직 다 벗지 못해서 ‘더’ 매력적인 여자 연기는 연예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3): 웹툰 [남의 부인], 그 남자의 진짜 파트너는 누구인가

나만 바라봐 ‘친구 없는 남자’. 이상적인 배우자의 조건으로 친구 없는 남자를 꼽는 여자들을 왕왕 본 적 있다. 낮은 술자리 빈도, 퇴근하면 칼 같이 귀가, 괜히 바람이나 넣는 허풍선이들 차단, 나를 남자들 친목 모임에 끌고 나갈 일도 없는, 그토록 ‘가정적인’ 남자와의 결혼생활은 비교적 수월할 거라고 말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인생과 나의 인생을 한 덩어리로 반죽하는 꿈을 꾸는 것일까? 여자의 마음 속에 ‘심어진’ 사랑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다.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이 되어, 그의 전부로 화하는 것. 그것이 도달할 수 있고 도달해야만 하는 사랑의 최고 경지라고 세상은 여자들의 귀에 대고 고함을 쳐 대니까. 여자들은 목표물을 감지했다면 제도를 이용해 재빨리 서로를 서로에게 귀속시키라고도 배운다. 단체생활, 경제공동체, 육아파트너십이기보다, ‘사랑의 정수’를 실현하는 결승선으로 신화화된 결혼은 늘 여성의 -강요된- 최종 목적지로 묘사된다. 반대로, 어떤 남자가 ‘친구 없는 여자’를 이상형이라 떠들고 다닌다고 가정해 보자. 연애에 좀 식견이 있는 여자라면 입을 모아 “도망쳐!”를 외치리라. 지금은 꽤 잘 알려진, 데이트폭력과 연인 간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는 여성을 외부 세계와 연결시키는 다리를 끊어 놓는 것이다. 여성을 가족, 친구, 동료, 모든 대외 활동으로부터 고립시켜서, 남자의 폭력성이 효과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빈 땅으로 만들 속셈이다. 물론 여자도 연인의 인간관계에 가위를 들이댈 때가 있다. 기껏해야 나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성매매를 하거나, 술을 너무 먹거나 … 따위의 꺼림칙한 친구들을 멀리해 달라는 부탁이지만, 어지간히 말 잘 듣는 남자라도 이런 요구에 응하지는 않는다. 만나도 안 만난 척하고, 갖은 핑계를 대 자리에 나가고, 네가 날 화나게 하니 나도 너를 실망시키겠다는 식으로 합리화해서라도, 그들은 비밀스러운 우정을 지속할 것이다. 남자들은 사랑이 인생의 기적이고 결혼은 그 기적 중에서도 절정의 순간이라고 배우지 않기 ...

부서진 엄마들 BROKEN MUMS (2): [유전], 가부장제 컬트

The Unpresentable 애니(토니 콜레트 분)는 아들 피터가 못미덥다. 친구네 하우스 파티에 다녀오겠다고 차를 빌려 달란다. 피터가 술을 마실 것 같다고 걱정하던 애니는 찰리를 딸려 보낸다. 챙겨야 할 여동생이 있으면 나을까 싶었다. 하지만 열 여섯 피터는 너무 어리다. 그는 기어코 찰리를 떼어 놓는다. 열 세 살 찰리는 더 어리다. 호두로 범벅이 된 케이크를 먹은 찰리가 견과류 알레르기 반응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피터는 차 뒷좌석에 찰리를 싣고 칠흑 같은 도로를 질주한다. 야생동물이 튀어나왔다. 핸들을 꺾는다. 찰리는 금방이라도 질식할 듯 헐떡이며 창 밖에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피터는 곧장 방으로 향한다. 침대에 누워 동이 틀 때까지 귀를 기울인다. 애니가 남편 스티브와 인사를 나누고, 집 대문이 닫히고, 차 문이 열리고, 숨이 넘어가더니, 연속해서 포효하는 소리가 들린다. 화면은 찰리의 머리통이 전봇대에 짓이겨지며 굴러 떨어진 도로변 자리를 비췄다가 애니의 침실로 이동한다. 애니는 바닥에서 몸부림친다. "그냥 죽고 싶어, 너무 너무 아파, 난 죽어야 돼." 자가용에 팽개쳐져 있던 딸의 훼손된 몸뚱이를 발견한 고통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애니의 언어는 퇴행한 것처럼 단순해지고 말은 곡성이 된다.  [유전]은 공포 영화다. 웨스턴 호러 무비답게 귀신보다는 유령이라는 호명이 어울리는 존재들이 등장하고, 주인공 가족은 흉흉한 기운이 깃든 집을 곧 죽어도 떠나지 않으며, 등장인물을 추격하는 초자연적이고 불길한 현상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 미쳐버린 늙은 여자도 나오고, 미쳐가는 안 늙은 여자도 나오고, 소름끼치는 여자 꼬마도 나온다. [유전]의 감독 아리 에스터는 장르 도식을 충실히 답습하면서 여기에 비극적인 가족 드라마를 녹여냈다. 사탄이 강림하려면 가족은 붕괴되어야 하고, 가족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이 가족사의 중심에 있는 애니의 이성을 초토화시킬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찰리의 죽음은 그래서 시각적으로나 정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