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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April, 2020

요즘 읽은 웹툰(5): 어떤 웹툰에 대한 소수의견

[새디스틱 뷰티] 외전B가 봄툰 서버를 터뜨렸다. [새디스틱 뷰티]는 BDSM 소재의 성인 웹툰이다. 성인물 치고는 호흡이 꽤 긴데(117화 완결) 내가 이 웹툰을 끝까지 잡고 본 이유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론 문창과-출판계를 배경으로 끌어왔기 때문이고(개인적인 흥미다), 작화가 훌륭하기 때문이고(성인물은 어찌됐건 누드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벗는 순간 너무나도 명징하게(…) 느껴진다), ‘시대정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여성향 에로물에는 어떻게 스며들고 융화될 수 있는지 관찰하기 좋은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천두나’. 문창과 재학 중 이미 등단하다 못해 심지어 데뷔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렸지만, 여류 작가라는 딱지가 커리어에 페널티가 될 거라 예상해 ‘천반석’이라는 가명으로 활동 중이고, 몇 년 간 슬럼프에 빠져 차기작을 내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 믿을 수 없이 엄청나게 유망한(…) 예술가가 부진한 원인이 변민호, 미래에 [외전 B]의 주인공이 될 예정인 구남친이다. 천두나와 문창과 CC였던 변민호는 자격지심 덩어리다. 남의 글에 대한 신랄한 평가로 분위기를 조져 놓지만 자기 글은 또 제대로 쓰지는 못하는 합평 빌런의 전형이랄까 그런 것이다. 그런 남자 변민호가 여자 천두나와 사귀었으니 결말은 예상 가능하다. 변민호의 죄목은 가스라이팅이다. 천두나의 글을 교묘하게 깎아내리고, 그래서 천두나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래서 천두나는 변민호의 평가적 시선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리고 순진한 시절, 대체로 예스걸이었던 천두나는 변민호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 막 나가는 심정에서 동기인 차우경(남자)과 섹스를 하고, 에세머인 차우경과의 관계 속에서 펨돔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엄청나고 엄청난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새디스틱 뷰티]는 이 과격하고 지배적인 색정광이면서 한편으로는 방어적이고 자기징벌적인 측면이 있는 천두나가 ‘우해솔’이라는 순종적인 남자와 순정한 사랑을 만나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과...

26만의 남성성

다 쉰 떡밥 같지만 ‘야동을 보다가’ 얘길 다시 한 번 해야 겠다. 인디밴드 ‘중식이’가 2014년 발표한 이 곡의 남성 화자는 만년 무직 청년이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근황을 알게 된 참이다. 성욕을 해결할 요량으로 내려받은 “야동”을 통해서다. 남자들에게는 비밀도 아닌 ‘국산 야동’의 생산 경로는 화자에게도 훤하다. 이 성관계 영상의 촬영과 유포는 전 여자친구 모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는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듯 집요한 태도로 영상을 탐구한다. 자신의 음경과 남자의 음경을 비교한다. 자신은 본 적 없는 여자의 표정을 관찰한다. 화자가 이 ‘해프닝’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직업이 없으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여자가 없고, 여자가 없으니 외롭고, 외로우니 ‘남의 섹스’라도 엿봐야 하지만, ‘빼앗긴’ 여자가 출현하는 바람에 쾌락마저 봉쇄당하는, 나의 초라하고 남루한 남성성.  N포세대의 대변인을 참칭하며 ‘중식이’가 재현한 남성성은 동세대 인셀(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의 멘탈리티에 근사했지만 딱히 획기적인 구석은 없었다. 대화 속에서건, 미디어 속에서건, 남성의 자기 위안은 -연민이냐 경멸이냐는 뉘앙스 차이가 있을 뿐- 손상된 남성성을 표상한다. 이 손상된 남성성의 배경이 ‘노란 장판’이라면 그 반대쪽 끝에는 ‘룸’이라는 강인한 남성성의 무대가 있다. ‘노란 장판’ 위 남자는 불법촬영물을 보며 자위를 하지만 ‘룸’ 속의 남자들은 여자를 줄 세우고 골라낸다. 전자가 후자보다 하층 계급의 남성이라는 추론은 현실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노란 장판’과 ‘룸’의 양극단을 연결하는 일직선 위에서 여성은 남성의 계급을 가리키는 지표로 기능한다. 책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미국의 젠더/퀴어/비평이론 학자 이브 세즈윅이 고안한 호모소셜homosocial 개념을 통해 남자-되기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호모소셜은 남성 구성원들이 서로를 ‘진정한’ 남자로 인정하고 인정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