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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September, 2019

요즘 읽은 웹툰(5): 어떤 웹툰에 대한 소수의견

[새디스틱 뷰티] 외전B가 봄툰 서버를 터뜨렸다. [새디스틱 뷰티]는 BDSM 소재의 성인 웹툰이다. 성인물 치고는 호흡이 꽤 긴데(117화 완결) 내가 이 웹툰을 끝까지 잡고 본 이유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론 문창과-출판계를 배경으로 끌어왔기 때문이고(개인적인 흥미다), 작화가 훌륭하기 때문이고(성인물은 어찌됐건 누드를 그려야 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벗는 순간 너무나도 명징하게(…) 느껴진다), ‘시대정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여성향 에로물에는 어떻게 스며들고 융화될 수 있는지 관찰하기 좋은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천두나’. 문창과 재학 중 이미 등단하다 못해 심지어 데뷔작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버렸지만, 여류 작가라는 딱지가 커리어에 페널티가 될 거라 예상해 ‘천반석’이라는 가명으로 활동 중이고, 몇 년 간 슬럼프에 빠져 차기작을 내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 믿을 수 없이 엄청나게 유망한(…) 예술가가 부진한 원인이 변민호, 미래에 [외전 B]의 주인공이 될 예정인 구남친이다. 천두나와 문창과 CC였던 변민호는 자격지심 덩어리다. 남의 글에 대한 신랄한 평가로 분위기를 조져 놓지만 자기 글은 또 제대로 쓰지는 못하는 합평 빌런의 전형이랄까 그런 것이다. 그런 남자 변민호가 여자 천두나와 사귀었으니 결말은 예상 가능하다. 변민호의 죄목은 가스라이팅이다. 천두나의 글을 교묘하게 깎아내리고, 그래서 천두나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래서 천두나는 변민호의 평가적 시선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리고 순진한 시절, 대체로 예스걸이었던 천두나는 변민호에게 뒤통수를 맞은 뒤 막 나가는 심정에서 동기인 차우경(남자)과 섹스를 하고, 에세머인 차우경과의 관계 속에서 펨돔으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엄청나고 엄청난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새디스틱 뷰티]는 이 과격하고 지배적인 색정광이면서 한편으로는 방어적이고 자기징벌적인 측면이 있는 천두나가 ‘우해솔’이라는 순종적인 남자와 순정한 사랑을 만나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과...

존재의 응달, 웹툰 [극락왕생]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귀신, 을 그려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흑발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여자를 떠올릴 것이다. 귀신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우리는 그 형상으로부터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현상이 연민할 만한 사연(‘한’)에서 생성되었다고 짐작한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라 할 수 있는 ‘한’은 여성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가장 비천한 삶에 배어드는 정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대당한 여자들 외에도 낙태아, 버려진 아이들, 미쳐버린 노인들, 자살사망자들 … 이 이승을 떠나지 못할 거라 흔히 생각한다. 충분히 애도 받거나 기억될 수 없는 죽음으로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사람됨’의 경계 밖에 내몰린 존재들은 죽어서도 이승을 부유하느라 저승에 소속되는 데 실패한다. 귀신이라는 발상이 낙인 찍고, 배제하고, 소외시킨 것들을 향한 뭇사람의 죄책감에서 배태되었다고 할 때, 우리는 공포와 죄의식 사이의 긴밀한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악귀는 추방당한 것들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추방자들은 ‘악귀’를 상상하면서 사적이고 심리적인 형태의 처벌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산 자들은 이토록 무거운 사념에 영영 구속되는 삶을 원하지 않게도 마련이다. 죽은 자의 억울한 사정을 밝혀주거나 장례를 제대로 치러 줌으로써 망령을 천도시키는 귀신 이야기의 결말 관습은 우연히 형성된 것 같지가 않다. 사람들은 ‘기억하기’라는 행위, 즉, 사회적 환대의 의례를 갖춤으로써 버림받은 것들의 ‘사람됨’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킨다면 그들이 품은 원한도 해소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셈이다.  이 같은 공포 메커니즘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귀신-공포물은 비윤리적이다. 양식화된 귀신 이미지의 말초적 소비 자체가 목표인 공포물은 ‘사람됨’에서 배제된 대상들, 달리 표현하면 사회적 소수자를 타자화하는 기제를 증강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삼사십대 남자 귀신보다는 어린아이와 여자 귀신이 더 으스스하다고 심정적으로 합의했으며 이 합의에 따른 심상의 반응을 의심하지 않는다...